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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Fany/Essey

Ayubovan 스리랑카!



Friday, February 3, 2012


 봉사활동에세이 교내공모전에 참가했다. 생각정리도 할 겸 1월 달 프랑스에서 사용할 용돈벌이를 위해 참가를 했다. 수많은 사진들과 몇 번의 봉사활동 경험 중 어떤 이야기를 할까라고 생각하던 중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M.A.D'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상기시켜보았다. 2년 전 이맘 때, 비행기티켓을 예매하기 전까지만 해도 팀원 모두 과연 우리가 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계획차질들이 불러온 상황들을 통해 멘탈은 많이 물렁해졌다. 결론은...?


"불가능 할 것 같았지만, 불가능은 없었다."






 2012125일 나는 해외봉사를 위해 스리랑카로 떠났다. 혼자가 아닌 M.A.D(Make A Dream)이라는 조선대·전남대학교 연합소모임을 통해서 한 학기 동안 7명 모두 재학생의 신분으로 함께 스스로 계획하고, 후원 및 Self Fund raising을 통해 마스터플랜을 그렸다. 각자 학교의 해외문화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최소한의 비용을 충당했고, 후원금 및 후원물품을 통해 현지에서 생활 및 봉사활동을 위한 모든 것을 마련했다. 그래서 학기 중 국가 선정과 함께 유학생을 통한 현지기관과의 연락망을 계획했다. 틈틈이 우리는 단순히 노동을 통한 벌이가 아닌 다양한 공모전 참가를 통해 비용을 마련했다. 모든 순간이 긴장과 기대의 시간이었고, 그 만큼 실패의 쓴맛도 많이 보았다.

 

그럴수록 과연 우리가 스리랑카 땅을 밟을 수 있을까? 라는 우려 속에 다행히도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예매해 많은 짐을 가지고 인천-푸켓-방콕-콜롬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스리랑카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인도양의 눈물이라 불리는 스리랑카는 하늘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슬퍼 보이는 나라는 아니었다. 도시와 시골 어느 곳에서도 우리에게 미소를 짓는 현지 사람들을 마주했다. 몇 번의 해외경험 동안 이런 신기한 광경은 처음 본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짓는 그들을 통해 긴장감은 빠르게 증발되었다. 우리는 봉사활동과 국내 기업탐방을 겸하는 일정을 계획했었다. 그리고 봉사활동은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인근에 위치한 국립 켈라니야 대학교암마라수리야 고등학교’ 2곳에서 진행했다. 나는 교육봉사팀장으로서 이 2곳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봉사를 준비했다. 단순히 문화의 경계를 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시간과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비약한 IT교육 분야의 소외된 현실을 직시해 우리가 준비한 내용을 통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기대했다.

 

그래서 현지 KOICA 단원과의 협력을 통해 켈라니야 대학 한국어학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강당에서 진행했다. 한국의 과거 그리고 현재에 대한 문화와 함께 유행하던 한류 문화를 전파하는 시간과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실내·외를 오가며, 그들의 호응과 관심을 통해 이론과 영상으로 학습해왔던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에서 추운 겨울 팀원들과 함께 연습과 연습을 하며, 실수 없이 준비하기 위한 노력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봉사를 통해 그들은 답례로 환한 미소와 웃음으로 그들의 행복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만약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진행했던 봉사라면 단순히 관심 정도만 받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한국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들이었기에, 더욱 함께하는 데 있어서 쉽게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스리랑카 남부의 해안도시 갈레로 향했다. 갈레는 스리랑카가 영국 신민지 시대에 지배의 거점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곳이며, 견고한 성채를 가진 요새도시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역사와 전통을 넘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IT 교육을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준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연락을 통한 정보와는 현지사정 조금 열악해 학교의 모든 학생에게는 교육을 해줄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작은 컴퓨터실에서 몇 번의 순환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MS OFFICE 사용교육을 해주었다. 현지에서 요구한 파워포인트에 관한 교육은 많은 학생들이 크게 집중하고 수업에 열중했다. 그만큼 교육을 준비한 우리는 많은 한국의 대학에서는 필수이자,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도구라고 설명하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꿈을 PT 발표하는 시간을 갖고, 우수학생에게 상과 부상을 전달했다. 물론, 한 학생도 소외되지 않게 모두 상을 준비했고 기뻐하는 표정들을 보니 땀 흘린 보람을 느꼈다.

 

7명 모두 각자가 책임질 수 있는 역할을 통해 우리 모두 스리랑카에서의 봉사일정을 행복하게 마무리 지었다. 사실 이렇게 스스로 오랜 시간 준비해 계획한 봉사활동을 처음 하기에 막상 현실에 닥칠 때 막연할 줄 알았으나, 현장에서 느껴지는 학생들의 관심은 왜 우리가 더 준비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길 정도였다. 나는 몇 번의 국내·외 봉사를 통해 느꼈었던 감정은 바로 이였다. 봉사라는 활동을 통해 나보다 약자 혹은 소외된 사람이라는 편협한 시각을 갖고, 쉽게 정을 붙였고 이별의 순간 함께 눈물 흘리며,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순식간에 만들어진 정은 시간이 지나 순식간에 부식되었다. 일시적인 감정이 주는 기억의 인스턴트화는 우리 자신에게 봉사가 주는 참된 의미와 가치를 손상하는 일이다. 나는 이번 활동을 통해 보다는 책임이라는 소중한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쉽게 감정을 주거나 정을 줘서 크게 아쉬움을 주기 싫었다.

 

그래서 이번 봉사활동은 기간도 짧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수혜자로 하여금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책임기관과의 우선적인 접촉을 통해 한국에서 이메일로 수시로 확인하고 함께 피드백하며 탄탄하게 준비해왔다. 그리고 모든 활동이 끝나고, 아쉬움의 눈물보다는 막대한 책임감이 주는 무엇보다도 무거운 짐을 덜어냈다. 이 느낌은 다른 팀원보다 크게 다가왔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까지 틈틈이 해왔던 다양한 곳에서의 봉사활동 경험을 통해 나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유명한 건축가가 되어 많은 건축물을 통해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 자신을 자책하며, 더욱 더 나다운 내가 필요한 곳에서 건축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제3국에서의 건축의 사회적 기여에 관해 관심을 두고 있다. 물론 제3국이 아닌 국내에서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건축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막연한 진로의 방향성에 대해서 우울해 있을 때 봉사를 통해 더 새로운 길에 대한 탐닉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시작이 나에게 처음으로 책임이라는 가치를 알려준 봉사활동을 통해서였다.

 

앞으로 졸업 후 관련된 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곳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통해 소외된 90%를 위한 건축적인 해결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가보았던, 혹은 만나왔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세상과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전문기술을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착한건축, 착한공간을 연구하고 모두의 건축을 실현할 수 있는 그 날 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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