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남문시장을 알게 된 때는 2학년, 2009년 이었다.
동기들과 학교 프로젝트의 대상지 선정을 위해 대구 이곳저곳을 답사하던 중 처음 알게 되었다.
이 건물의 매력에 큰 감흥을 받은 나는, 이후로도 종종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영국에서 귀국한 뒤, 다시한번 들려온 남문시장 재개발 움직임에 너무 속이 상했다.
이 곳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리기 위해서, 4학년 1학기 친환경건축물 설계 프로젝트로 이 건물을 선정했다.
이번 글에서는 그 동안 작업한 사진과 프로젝트 자료를 담아 남문시장을 소개하고, 나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남문2지구 - 시대를 담은 아파트
대구의 지리적, 상업적 중심지인 중구에 위치하고 있고 대구도시철도 3개 노선이 모이는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중구에는 현재까지 서문시장을 포함해 약 4개의 전통시장이 남아있다. 이 시장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형마트가 중구내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전통시장과 상호협약을 맺어야 하는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실제로 한 대형마트가 이 조례 때문에 입점을 포기한 사례가 있다.
남문시장 일대는 대구읍성의 남문 앞에 위치해 있었고, 민간신앙에서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던 남산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천주교 대구교구청이 위치해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 중심지이다 보니 헌책방골목, 인쇄골목, 자동차골목과 같이 특색을 가진 상가 골목이 모여있다.
이와 동시에 오래전 부터 형성된 주택가가 남아 있다. 낙후된 동네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최근 들어 재개발사업으로 고층주상복합 아파트들이 하나둘 세워지고 있다.
이육사가 대구에 머물렀을때 지냈던 집의 위치가 이 일대였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하는 등, 오랜 역사와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남문시장 아파트는 1972년 1지구를 시작으로, 1975년에 2지구가 완공되었다. 5지구까지 차례로 주상복합 혹은 상가로써 건축 되었다.
남산동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시장 내에도 1940년대에 지어진 도시형 개량 한옥이 남아 있다.
시장에는 (당연히) 길마다 난전이 펼쳐져있다. 그래서 시장이 깊어질 수록 차량의 진입이 어렵다.
건물의 측면에서 1층 내부 상가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출입구가 좁고 어두워서 인지성이 떨어진다. 쉽게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내부로 들어가면, 영업중인 상가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모두 문을 닫았다.
채광과 환기가 잘 되지 않으니, 쓰레기가 쌓이고 냄새가 나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오래된 시장 상가일 수록 화재에 취약한데, 가장 큰 원인은 낡은 전기시설과 복잡한 배선 때문이다.
공공화장실 또한 사용하기가 영 꺼려지는 모습이다.
건물의 뒷편에는 램프가 있어서, 상부층으로의 접근이 가능하다. 40년전에 지어진 건물 답게 엘리베이터는 설치가 되어있지 않고, 램프 역시 휠체어나 장애인이 사용하기에는 법적 요건보다 가파르다.
1층 정면에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경사로와, 2층 주거부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다행히 2지구의 지하주차장은 어느정도 활용이 되고 있다. 3지구의 지하주차장은 난전으로 인한 차량 진입이 어렵고 관리가 어려워서 인지 폐쇄되어 있다.
활기차지만 번잡한 난전을 뒤로하고 2층으로 올라가 본다.
계단을 한번 꺽어 2층으로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고 이웃끼리 마주 볼 수 있는 네모난 중정이 나온다.
하늘로 시원하게 뚤린 중정 덕분에 햇살이 쏟아진다.
이런 도시 한복판에서, 오히려 현대 건축물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시퀀스와 공간감이다.
유명 건축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건축물은 아닐지라도, 도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아파트가 실험되었던 6-70년대의 시대적 배경이 낳은 건축물이다.
도시의 네모난 블럭 속에서 많은 집을 품으면서, 동시에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한 실험 중 하나가 중정형 아파트다.
특히 이 곳은 대상지가 시장인 만큼, 밖이 번잡하고 시끄럽기 때문에 내부 지향적인 중정을 입주자들이 공유하며 마당으로 사용 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멋지다.
이곳에 시대의 변화와 건축 역사가 담겨있다.
맑은 날이면 이 속에 하늘이 담기고 구름이 흘러간다.
밤에는 보름달이 걸리고, 눈이 오면 눈송이가 살포시 내려앉겠지.
해가 넘어가면서 중정에 비치는 그림자의 모습도 달라진다.
중정 너머로는 고층아파트들이 하나둘 솟아나고 있다. 40년 전에는 최첨단 이었던 이 아파트가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새것 만을 최고로 치는 우리는, 작은 집들을 허물고 솟아난 저 아파트들도 언젠가 퇴물 취급 할 것이다.
이 아파트에는 오래전부터 살아온 가족들이, 자식들은 분가시키고 두 노부부만 지내는 집이 많다.
아이들이 많지 않아서, 중정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모습이 반갑다.
여기서 보는 밤하늘은 어떨까
지리적 위치가 좋은 탓에, 이 곳은 오래전부터 재개발 움직임이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의 반대와 전통시장 보호에 부딪혀 번번히 실패했다.
최근, 조합을 설립하면 아파트 재개발이 훨씬 쉬워지는 법을 이용해서 재개발 하려는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조합이 설립되면 거주자의 절반만 동의를 해도 재개발 사업이 진행된다.
서두에서 설명 했듯이, 중구에는 남아있는 시장이 많지않다.
서문시장이나 교동시장 등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찾는 큰 시장이 대부분이고, 실제 인근 거주민들이 장을 보기 위해 찾을 수 있는 시장은 많지 않다.
전통시장 보호를 위한 조례가 있기에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남문시장이다.
또, 남문시장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바로 옆에 위치한
헌책방골목, 자동차골목, 인쇄골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요즘 도시들은 모두 특색있는 거리와 관광자원을 개발하는데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문시장의 납작만두와 대구 3대 통닭으로 꼽히는 진주통닭 등을 모두 없애버리고, 특색있는 골목을 고사시키는 행위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원본 자료 출처 :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장림종_박진희, 효형출판사
남문시장 2지구 아파트는, 우리나라에 지어진 중정형 아파트 중에서도 중정의 폭이 상당히 넓은 덕에 채광이 유리하고 거주환경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
대표적인 중정형 아파트들의 중정 체적. 가장 오른쪽이 남문2지구 아파트.
동대문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중정의 폭이 좁고 환경이 그리 좋지않음에도,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보존 하기로 결정되었다.
서울시가 26개 뉴타운 지구 가운데 오래된 아파트를 철거하는 대신 직접 사들여 리모델링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진희 연구원은 “국내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중정형 아파트를 보존함으로써 무조건 철거한 뒤 재개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도시 재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동대문 아파트 ⓒ박종오 기자
남문시장을 위한 제안
이런 문화적,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남문2지구 아파트가 재개발로 철거 된다는 것은 너무나 속상한 일이다.
이 건물에 대한 애정으로 한 학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물에 대해 더 알고, 사람들에게 가치를 알릴 수 있길 기대했다.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싶었다.
구청과 시청에 다 연락을 해보았지만, 도면을 구할 길이 없어서 실측을 하기로 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수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친환경건축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학기말 작업을 마무리 했다.
친환경, 지속가능성, 탄소발생최소화 등의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도시농업 등 다양한 친환경 요소를 도입했다.
여기까지의 작업은 1단계라 하고싶다.
2013년 개정된 주택법에 따라 기존 아파트의 증축이 가능하므로, 수직 증축이나 공간적인 개선 등 더 많은 것을 풀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친환경적인 요소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이 건물에서 가장 개선이 시급한 부분을 중심으로 나의 제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1층 상가의 채광과 환기의 어려움으로, 상가 내부가 활용되지 못한 채 어둠과 쓰레기로 가득 찬 것에 대한 공간적 개선이다.
2층의 중정 바닥에서 채광이 가능하도록 뚫어주기만 해도, 전기설비없이 충분한 채광이 가능하다.
상행위가 상대적으로 적은 주말에는 이곳에서 플리마켓(벼룩시장)이나 시장상인, 거주민과 연계한 쿠킹클래스(요리교실) 같은 프로그램을 열어 반월당이나 동성로로 부터 젊은 층을 끌어모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히 시장에 아케이드만 설치하는 한계를 넘어, 진정한 시장 현대화가 될 수 있다.
기존에 버려진 공간을 적극 활용해, 전국 어디에도 없는 특색있는 시장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유럽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좌측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스페인 발렌시아 / 스페인 바르셀로나
겨울철에는 중정으로 인해 에너지 손실이 많은 만큼, 지붕을 덮어주는 아이디어를 더한다면, 조금 더 환경이 개선 될 수 있다.
위 그림의 연출은 아이디어적인 측면이 강하고, 현실적으로는 좀더 고민이 필요하다.
중정 내부에는 거주자만 들어올 수 있도록 동선의 분리가 되어야 한다.
단면의 모습은 이렇다.
우측을 보면 기존의 경사로를 털어내고,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을 신설한 것을 볼 수 있다.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배려 뿐 아니라, 차후에 수직증축을 위해서도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
여기까지가 1단계 작업이고, 각 세대의 평면 개선이나 증축 등에 대해서 충분히 더 많은 작업이 이루어 질 수 있다.
남문시장 전체를 개선하고, 전통시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아이디어 스케치도 해 둔 상태다.
남문시장은 반드시..
대구에서는 지금, 구시대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좋은 사례들을 볼 수 있다.
근대건축물이 즐비한 북성로 일대에 리노베이션 사업을 적극 장려헤서 특색있는 거리로 탈바꿈 중인 [북성로의 재발견 프로젝트]와 대구의 근대적 유산과 이야기를 잘 활용한 [근대로의 여행] 등이 그것 이다.
철거와 재개발이 아닌 보존과 가치 재발견의 좋은 사례가 되었고, 문화컨텐츠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남문시장 일대 또한 관광상품으로도 가공할 수 있는 좋은 컨텐츠들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남문2지구는 공간적으로 잠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남문시장을 통해 대구에서 또 한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음을 믿는다.
남문시장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그 가치의 재발견으로 이어져야 한다.
남문시장 재개발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시는 분들의 생각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건축과 도시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남문시장이 철거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남문시장의 가치를 알리고,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재개발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만큼, 재개발을 막아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김태호(teo@archist.kr)
*마침 2016리모델링 건축대전 학생부문 공모분야가 '정비 및 개량이 필요한 도심 재래시장, 구역 또는 거리' 입니다. 남문2지구 도면이 필요하신 분은 실측한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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