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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o/Essey

기차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때, 나는 기차를 가장 선호한다.


기차는 묘한 설레임이 있다. 집을 떠난다는 약간의 불안함,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기대..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

나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 좋아서 가장 느린, 그리고 또 가장 저렴한 무궁화호를 탄다. 흔들리는 버스와 달리, 기차에서는 책을 볼 수도 있고 글을 쓸수도 있다.

가끔은 목적지로 가기위함이 아니라, 책을 읽고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이 좋아서 기차가 타고 싶어지기도 한다.






기차로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니, 많은 추억거리도 생겼다.


어느날 갑자기 부석사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아침일찍 기차를 타고 영주를 다녀온 일이 있다. 거리상으로 영주는 대구에서 꽤 멀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늘 한쪽 옆에 두었던 곳이다.


영주역에는 벽화와 포스트잍 등, 그곳을 다녀간 내 또래들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기차로는 중앙선에서 영동선과 경북선이 갈라지는 위치였기에 내일로 여행객들이  많이 거쳐갔던 덕이다.


부석사는 소백산을 품은 듯 하기도 그 속에 숨은 듯 하기도 했다. 지금의 부석사가 있기까지의 시간의 켜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부석사는 차마 그날의 내 가슴에 다 담을 수가 없었다. 아쉬움에 사진을 이리도찍고 저리도 찍어보고, 스케치도 하며 내 마음에 담으려 애썼다.


결국, 해가 저물때가 되어 급히 산사를 내려와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시간을 많이 지채한 탓에 대구로 내려오는 마지막 기차 시간이 촉박했다. 도중에 택시를 잡아타고서야 출발시간에 임박해 역에 도착했고, 내 상황을 짐작한 승무원 두분이 무전으로 기차를 붙잡고, 급히 발권을 도와주었다.

감사의 인사는 한마디 말로 전할 뿐이였고, 기차로 급히 달려 겨우 올라탈수 있었다.

기차에 많은 승객이 있는 것은 아니였지만 나로 인해 출발이 지연된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폐를 끼쳤지만, 나에게는 기차에 대한 소중한 기억 중 하나다.






그 이후에, 서울과 이곳저곳을 오가며 잠들거나 실수로 도착역을 지나쳤을때, 승무원들의 배려로 돌아오는 열차를 무임으로 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자랑할 것은 못되지만 기차에 더욱 정이 들게 된 일들이다.




꼭 2명씩 같이 앉게되는 기차의 일반적인 특성상, 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는지에 따라서도 여행의 인상이 많이 달라진다. 

무궁화호에는 왁자지껄한 할머니들이 우르르 타기도 하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한 학생도 꽤 있다. 늦은 저녁이면 술에 취해 목소리가 한층 커진 아저씨들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데에 4시간쯤 걸리는 무궁화호는 다소 지겨울 수 밖에 없는 여정이다. 무궁화를 자주타는 나는, 책도 보고 풍경도 보고, 잠도 자다보면 금방 도착한다고 느끼기에 그 긴 시간을 즐긴다.

한번은 내 옆자리에 또래의 여학생이 앉은 적이 있다. 서울가는 무궁화호를 거의 타보지 않았던 그 애는 무척이나 고역인듯 했다. 지겨워서 몸을 베베 꼬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지겨워하는 모습이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아니여서,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눴다. 그해 졸업을 앞 둔 그 친구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며 긴 시간의 열차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있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도 재미있었고, 부대에서 휴가를 나왔던 나에게 군대 이야기를 예전 군대 이야기를 해주시던 어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난다.




아무래도 기차에 대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2009년 대학동기들과 내일로 여행을 했던 때 인것 같다. 시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돌멩이로 공기놀이를하고, 들어오는 열차에 손을 흔들면 기관사 아저씨가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던, 그리고 열차에서는 마주보고 앉아 서로 다리를 뻗고 이야기를 나누면 모든 것이 즐겁기만 했던 그때의 기억들…



오늘도 플랫폼에 서서 무궁화호 열차를 기다리며, 기차와 함께한 많은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혹시 그때 내 옆에 앉았던 사람들이 다시 옆자리에 앉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설레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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