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o/[런던건축일기]

[29주차] 11주간 나는 무엇을 하였나

x Teo


11주간 나는 무엇을 하였나


18주차를 마지막으로 무려 11주간 런던건축일기의 업데이트가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나의 일기를 보고 있다고들 해서, 그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한데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

하지만, 나의 일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거라는 것도 알고있다.


그간 매우 바빴기 때문에 일기를 쓰지 ‘못한' 혹은 ‘않은' 변명이자 근황을 늘어놓아 보겠다.


18주차 일기 마지막에 썼듯이, 8일간의 독일여행을 다녀왔고 3개의 독일건축배낭여행 후기를 올린 뒤 그 역시 중단되었다.


2015/06/24 - [독일건축배낭여행] 0.여행의 준비

2015/06/29 - [독일건축배낭여행] 1.뒤셀도르프의 기억

2015/07/15 - [독일건축배낭여행] 2.예술의 둥지가 된 미사일기지


0Fany형의 광주공원 시민회관 리뷰의 제목인 '습관적인 미완과 책임의 부재'는 나를 지칭하는 듯 했다ㅜㅜ

책임감없이 습관적으로 연재를 중단하는 나의 마음을 콕콕콕콕 찔러댔다. 남은 독일여행기는 차차 쓸 예정이다. 진짜로...



리모델링 프로젝트


요즘은 왠지 모르게 회사의 일들 재미있고, 업무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기분이다.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한주한주가 금새 지나간다.

월요일인가 싶으면 어느새 금요일이고, 주말은 뿅짠하고 사라진다. 다시 월요일이 오면 금새 또 금요일, 역시 주말은 뿅짠.


최근에는 사무실에서 다양한 업무를 했다.

가장 강렬했던 기억 사무용 건물의 리모델링 프로젝트다.

이 건물은 일반적인 회사가 아닌, 특수한 목적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지금 단계에서, 그곳이 어디인지를 밝혀서는 안될 것 같다. 나중에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 공개하는 걸로!

지명초청공모...라고 말하기에는 거창하지만, 몇개의 건축사무소가 각자의 제안을 발표한 뒤, 실시설계를 진행할 사무소를 선정했다.

반드시 선정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약 2주의 시간동안 집중적으로 몰입해서 진행했다.

단순히 프로젝트 하나를 하는 것과의 차이점이라면, PT를 통해 건축주에게 우리의 안을 이해시킴과 동시에 다른 사무소들과는 차별화되는 매력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제안에서 중요한 내용은 3가지로 압축 할 수 있을 듯 하다.


1. 건물의 사용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고도 내부를 변경하고 증축할 수 있음

2. 합리적인 사무공간과 특수목적의 공간이 각 층별로 위계를 가짐

3. 상징성을 가지는 외형과 다목적 공간


평면과 외관 모두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컨셉이 드러나야 했다.

여러 직원들이 각자 맡은 부분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모두가 모여앉아 아이디어를 모으기도 했다.

일정에 맞춰 좋은 아이디어들과 완성도 높은 프리젠테이션이 준비된 후, 모형과 3D렌더링 이미지까지 준비해서 소장님께서 직접 PT를 하고 오셨다.


클라이언트 쪽에서 조차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발표한 우리의 제안을 보고난 뒤에는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안이 굉장히 좋은 평가와 관심을 받은 뒤 사무실로 돌아오신 소장님의 기분은 매우 좋으셨고, 발표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몇일 전 발표가 났고, 일치감치 나는 예상을 했지만

우리가 선정되었다!!!


건물이 있는 장소가 버킹엄궁전과 Victoria역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어 장소성이 강하고, Council도 Planning에 꽤나 깐깐한 곳이라 여러 난관이 예상되지만, 이 프로젝트를 우리가 완성 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엄청난 기대와 설레임이 있다.



소장님들과 한국의 한 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님의 인연으로, 두명의 학생이 방학기간동안 실습을 와있다.

프로젝트의 완성도가 높을 수 있었던 이유가 이 친구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모형은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고 나를 비롯한 여러 직원들이 너무 많은 업무량을 짊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함께 일을 하면서 여러모로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서 좋다.



적극적인 건축가가 되기위한 프로젝트


또다른 재미있는 업무로는, 우리 사무소에서 미래성장동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업이 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건축디자인이라기 보다는 개발에 가까운 일이다. 


일을 받아야 설계를 할 수 있는 건축가는, 그 점에서 수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일차적으로 도시에 대한 분석능력을 가진 건축가가 그 능력을 활용해서 정보를 생산하고 그것을 팔거나 협업자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실제 건축행위가 이루어지면 건축설계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여기서 다시 건축가에게 수익이 생기는 것이다.

이 프로세스는 스스로가 일을 만들어내는, 적극적 건축가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도시에 대해 분석하고 잠재적 가치가 있는 곳을 찾는 일이나, 찾은 땅이나 사례를 종합해서 보고서로 작성하는 일을 몇번 도왔다.

건축공간디자인보다 도시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나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사업이다.


이 사업은 궁극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필요로 하는데, 소장님께서 나에게 이 일 진행 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자 제안을 하셨다.

하지만 단순히 하다가 그만둘 수 있는 일이 아닌, 책임감을 가지고 멀리 봐야하는 일이었다.

소장님이 굳이 나에게 제안을 하신 이유는, 건축을 전공했지만 컴퓨터에 대한 약간의 배경을 가진 나에게서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이다.


몇날몇일을 고민했다.

프로젝트 자체에는 굉장한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기 때문이다.

업무를 진행하는 사람이 아닌, 업무를 위한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업무를 진행하는 것에 비해, 도구를 만드는 것은 내향적 성향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성격과 적성이 긴 시간을 인내하며 이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소장님들과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그 순간에, 깊은 대화를 나누다보니 내 모든 진심이 나왔고, 결국 이 일을 평생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결론은 못하겠다는 것.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내가 너무 짧게만 내다본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도구를 만들기 위한 프로그래밍이 1년 365일 내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프로그래밍을 겸하면서 나도 그 프로젝트를 얼마든지 진행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임지고 해보겠다고 대답을 한 뒤에, 정말 나에게 맞지 않다면 발을 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장님이 원치 않는 결과이고 나 또한 그런 무책임한 약속을 하고 싶진 않았다. 하다가 그만둬서 피해가 생기는 것은 나보다는 회사인데, 그렇게 양심적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나쁜 생각도 든다.


인생에서 한번 놓쳐 버린 버스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그 버스가 다시 오지는 않지만, 강한 의지가 있다면 뛰어가서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겠지만.

지금에서야 나는 뛰어가서 잡아볼까 주춤한다. 그와동시에 다음에 어떤 버스가 올지도 고민한다. 일단 뛰어볼까???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다 흘러가겠다..





Victorian House를 찍다.


Serpentine Pavillon을 다함께 갔을때, 광각렌즈를 가져가서 사진을 찍었었다.


2015/06/28 - 서펜타인 파빌리온 2015 - Selgascano


그 후 소장님께서, 완공된 프로젝트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서 사진을 촬영할 일이 있으니 찍어보겠냐고 하셨다. 당연히 Yes, Sure, Of course!

'이게 나의 건축사진 작업 입니다'하고 내세우기에는 부족하지만,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동안 글로만 설명하던 Victorian House의 증개축 작업 결과물을 사진을 통해 잠깐 보자면.


평범한 Victorian양식의 Semi-Detached House는 이런 모습이다. 육각형의 절반이 튀어나온 형태가 가장 큰 특징이다.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형으로, 우리의 도시형 한옥과 탄생배경이 거의 같다.

런던의 주택 대다수가 빅토리안 Semi-Detached나 Terraced House다. 이런 주택들은 족히 150년은 되었다고 보면 된다.


Reception Room(거실 혹은 응접실)은 이런식이고,



Side Extension이나 Rear Extension을 한 부엌은 이런 모습이다.


다락을 개조한 Loft Conversion 후, 침실로 이용하면 이런 모습이 된다.




짧막한 근황들


- 독일에서 모기가 물린 줄 알았던 것이 점점 심해졌다. 알고보니 게스트하우스에서 Bedbug에 물린거였다.. 일주일 쯤을 고생했다.. 

모기가 가려움이 1이라면 Bedbug은 10. 다행히도 옷에 옮겨오진 않았다.


- 주말을 이용해서, 남부해안의 Rye라는 작은 마을과 웨일즈의 Brecon Beacon National Park를 다녀왔다. 영국의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London, Rye, Wales 그리고 예전에 갔던 Bath. 그 도시의 건물끼리는 유사하지만, 도시 간에는 다른 재료와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찌생각하면 당연한 것인데, 현대의 우리나라 도시 간에는 느끼기 힘든 차이다.


Rye는 여왕도 다녀간 600년 된 여관이 있다. 이름은 여관, 가격은 호텔.  작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Brecon Beacon National Park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던 풍광에 입이 떡 벌여졌다. 하지만 정상의 높이는 겨우 800m 남짓.

이 곳은 전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별을 보기 좋은 곳으로, 밤하늘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있다. 그래서 무진장 기대를 하며 사진 장비도 챙겨갔으나...

그렇게 맑던 날씨가, 밤이 되자 구름이 잔뜩 끼어서 아주 잠깐동안만 별을 볼 수 있었다.....실망... 다음에 다시 또 오라는 의미겠지..





- Mike가 결혼을 했다. 결혼식을 프랑스 리옹 근처에서 치뤘기 때문에, 갈 수는 없었다.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처럼 로맨틱한 결혼식이었을까.


- 새로운 Partner로 양소장님이 합류하셨다. 양소장님은 BIM에 굉장히 해박해서,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전직원을 대상으로 BIM특강을 주시고 있다.


- 사촌동생이 런던에 왔다갔다. 서로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내가 직접 이곳저곳을 데려가지 못해 아쉬웠다. 그럼에도 친구들끼리 잘 다니고 돌아갔다.


- 공간학생기자 활동을 할때는 기자님이었던 SJ누나가 워홀비자로 런던에 왔다. 한국에서도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는데, 둘이 술을 마시며 엄청나게 깊이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SJ누나는 나랑 고작 1-2살 차이인데, 나의 고민의 본질적 문제에 질문을 던질때마다 나이가 훨씬 더 많으면서 뻥치는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자극이 되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 최근에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려고 꽤나 쫓아다녔으니까. 건축을 전공했거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도 두명 알게되었다. 잠깐 만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좀더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다. 







이곳은 벌써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아마도 런던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 되겠지.


요즘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은,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날이 다가온다는 압박 때문인 것 같다.





'Teo > [런던건축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주차] 주4일제?!  (4) 2015.09.06
[30주차] 헤어짐 그리고 만남  (3) 2015.08.31
[18주차] 놀기 좋은 6월  (11) 2015.06.06
[17주차] 새로운 사람과 일을 한다는 것  (1) 2015.05.31
[13주차] Barbecue Party  (7) 2015.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