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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o/Travel X Photo

[독일건축배낭여행] 3.테마파크가 된 석탄공장 - Zollver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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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표적 공업지대 Ruhr의 Essen시에는 Zollverein이라는 석탄공장이 있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는데 큰 몫을 했고, 독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탄광이었다. 하지만 석탄이 고갈되면서 1986년에 문을 닫고 버려진 땅이 되었다. 에센의 시민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도시는 생기를 잃어갔다.


10여 년간 일반인이 접근 할 수 없는 채 방치되었고, 시민들도 이 흉물이 사라지길 바랬다. 그 바람대로 지역개발업자가 석탄공장을 모두 밀어버리고 새로운 개발을 하려고 움직였다. 

그러던 중 한 예술가가 이 탄광의 한 켠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산업시대의 유산으로써 이 공장의 가치를 눈 여겨본 사람들은 보존 운동을 시작한다.

이것을 알게 된 주 정부 역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탄광으로 유명했던 이 곳의 가치를 인정했고, 개발업자로부터 땅을 모두 사들인 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문화공간으로써의 재탄생 계획한다.


이러한 시민과 정부의 노력으로, 졸페라인 석탄공장은 특색있는 관광지로 떠올랐고, 공업도시였던 에센은 2010년에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되었다.

깊은 갱도에서부터 석탄을 끌어올리던 거대한 권양탑은 졸페라인의 가장 큰 상징물임과 동시에 루르의 에펠탑으로도 불린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빨간 전화박스를 디자인 한것으로도 유명한 길버트 스콧(Giles Gilbert Scott)에 의해 기능적이기만 한 화력발전소가 아닌, 건축적 아름다움을 가진 건축이었기에 산업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채 새로운 기능이 부여 될 수 있었다.


졸페라인 또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탄공장으로 불려질 수 있었던 것은 프리츠 슈프(Pritz Schupp)와 마틴 크레머(Martin Kremmer) 두 독일 건축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산시설의 환경을 고려해 마스터플랜을 짰고, 랜드마크가 된 권양탑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후 졸페라인 재생프로젝트에서 Ruhr Museum은 렘 쿨하스의 OMA, Reddot Design Museum은 노만 포스터, Folkwang Design School은 SANAA의 손을 거쳐 재탄생 되었다.



에센에서 졸페라인까지는 에센중앙역 지하에서 출발하는 트램을 타고 갈 수 있다.




Ruhr Museum - Rem Koolhaas


저 멀리 주황색 에스컬레이터가 Ruhr Museum으로 올라가는 입구다.






Ruhr Museum에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되는 루르지역의 역사와 유적을 전시하고 있고, 석탄공장의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물품들부터 시작해서 나치에 의해 강제동원 된 피해자들에 대한 기록까지 자세하고 방대한 자료가 있다고 한다. 

입장료가 있고, 석탄공장을 모두 둘러보기에도 나에게는 시간이 부족해서 들어가지 못했다. 



박물관에 들어가진 않아도, 다양한 기계설비들이 건물 내에 남아있는 모습은 새로운 공간체험을 준다.




특별한 표지판이 없었지만, 나는 혼날 각오를 하고 박물관 옆의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주로 투어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이 투어를 하면서 옥상을 올라가는 듯 했다. 가이드없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제지를 당했다.

표지판은 없지만, 옥상을 올라가는 것은 막지 않았다.



석탄을 옮기던 컨베이어벨트가 지나던 통로는 관람객의 전시시설 내의 이동을 위한 동선이나 산책로로 사용된다.

거대한 구조체의 비일상적인 모습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뮤지움 건물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해 본다.


Halle 12(12번 홀)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장 겸 전시장과 구내식당 등이 있다.

이 식당에서 먹은 것이 독일에서 먹은 첫 소시지였다. 맥주와 함께!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두개의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넓은 면적이다. 구석구석을 모두 둘러보려면 하루종일이 걸린다.



석탄을 옮기던 선로의 흔적도 남아있다.



금방이라도 변신 할 것 같은, 트랜스포머의 디셉티콘처럼 생겼다.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한참을 쳐다봤다.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역동적인 형태다.



이 곳은 코크스 가공 공장이다. 코크스를 제련할 때는 냉각수가 필요한데, 이 냉각수를 보관하고 식히던 곳을 스쿠버다이빙과 아이스링크로 바꾼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냉각수 보관 탱크였던 곳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모습은 내가 졸페라인을 처음 알게 된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여름에만 운영이 되고, 지금은 일반 방문객은 들어갈 수 없어서 아쉬웠다.



여기가 바로 냉각수를 식히던 곳이자 겨울이 되면 아이스링크장으로 쓰이는 곳이다. 

Picturesque, Cinemascope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영화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SANAA의 건축을 먼저 보고 온 듯한 한 무리의 관광객들은 이 장면을 극찬하면서, 'SANAA라는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그 건물은 도대체 뭐가 대단하다는 거냐'라고 반문하며, 폐허가 되었던 산업유산을 추켜세웠다. 수많은 건축학도들이 동경하는 SANAA이지만, 그 관광객의 비평을 나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단 두명의 남녀만이 이 곳 벤치에 앉아있는 순간을 포착했다.



우디 앨런의 로맨스 영화 배경으로도 어울릴법한 곳이다.

녹쓴 철과 기름 냄새가 났지만, 아직 영화에서 후각을 전달하는 기술이 상용화 되진 않았으니...





템즈강변의 런던아이 못지않게 멋진 풍경이다. 잡초사이에서 핀 꽃들 마저도 깔맞춤이 되어있다니!



투어 프로그램 티켓을 사면, 저 멀리 있는 사람들 처럼 내부도 가이드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듯 하다.

저렴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다음번에는 꼭 투어에 합류해야겠다.




레스토랑이 있어서, 넓은 부지를 돌아다니며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을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코크스 가공 공장의 위용에 정신이 팔려 레스토랑은 사진을 남기지도 못했다.



석탄을 날랐을 기관차다. 단단하고도 기능적이며 센스있는, 독일스러운 디자인이다.




각 구역을 잇는 선로가 있던 곳은 녹지띠가 함께 이어지면서, 녹쓴 철과 낡은 건물의 칙칙함 속에서 휴식을 준다.



또다른 권양탑






SANAA의 Design School


 

SANAA의 작품을 보러가는 길에 발견했다. 처음엔 누군가의 센스있는 낙서라고 생각했는데, 의도된 표지석 같기도 하고 예술작업 같기도 하다.



정육면체에 가까운 볼륨과 빵빵이창은 이탈리아 고전건축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불규칙하게 뒤섞인 듯 하면서도 정돈된 묘미. 그게 바로 SANAA 건축의 매력인 것 같다.





내부도 깔끔하고 간결하다.

건물내부는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텅 비어 보인다. 평면을 보면 건축가의 개념을 이해 할 수 있다.


먼저 1층 평면을 얼핏보면, 코어와 회의실이 대공간속에 덩그러니 놓여진 것 같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보면, 출입구를 통해 건물 내부로 들어와서 상부층으로 올라가는 수직 동선까지의 빈 공간이 현관의 성격을 갖는다. 도면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 촬영한 두번째 사진을 보면 슬라이딩도어가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1층에서 전시나 행사가 있을때 공간을 구획할 수 있겠다. 이렇듯 내부 공간은 건물의 현관 및 이벤트 공간으로써의 역할에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내가 방문했을때도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가장 오른쪽의 평면을 보면, 이 건물이 정사각형의 모듈로 짜여진 것이 보인다. 

가운데의 두 평면에서는 모듈 속에 놓여진 코어가 자연스럽게 공간을 구획하고, 각 층별로 다른 성격의 공간배치를 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작위와 체계, 그 사이 접점에서 명쾌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SANAA의 건축이다. 






Reddot Design Museum - Norman Foster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로 유명한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이다. 이 곳은 원래 보일러탱크가 있던 건물로, 노만 포스터에 의해 리노베이션 되었다.



현관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면 바로 기념품가게가 나온다. 티켓부스를 겸하고 있긴 하지만, 너무 산만하고 자연스러운 동선에 방해가 된다. 

뱅크시가 제작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영화가 있다. 예술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비꼰 영화이다. 전시시설에서 기념품을 통해 수입을 얻는 것을 무조건 욕 할순 없겠지만, 이런식은 좀 별로다. 포스터의 홈페이지에서 도면을 찾아보니, 처음부터 계획된 것 같다. 건축주의 요구였을까.


원래는 입장료가 있지만, 내가 갔을때는 다음 전시를 준비하는 중이라 입장료 없이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사실 건축가가 이 건물 내부에 뭘 바꾼건지 선뜻 잘 드러나지가 않는다. 

구조체와 대부분의 보일러 설비를 남겨두었고, 그 사이로 관객이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만들었다.

리노베이션 전후를 비교해 보아야지만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남겨진 공간 속에 디자인 어워드를 받은 제품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기존의 공간감과 기계설비를 유지하면서 전시시설로 탈바꿈 시켰다. 

하이테크적인 표현은 찾기가 어렵고, 노만 포스터의 작업이라고 알지 못하고 본다면 짐작도 못할 작품이었다. 

이미 그 자체로 강한 힘을 가진 건축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리노베이션 건축가로서 스스로는 모습을 감췄다. 






테마파크를 떠나며




테마파크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놀이공원을 떠올린다. 하지만 한국민속촌 같은 곳도 테마파크 중 하나다.

졸페라인은 새로운 유형의 테마파크다. 검은 연기를 내뿜던 굴뚝 산업의 대표적 건물이, 굴뚝없는 산업으로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놀이기구와 수많은 인파로 가득한 놀이공원 보다 설레었다. 비일상적 공간을 경험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 였다.



Landscape Park Nord Duisburg와 Wuppertal도 가보고 싶었지만, 졸페라인을 둘러보는데만도 하루종일이 걸렸다. 게다가 저녁이면 뒤셀도르프에서 만난 친구들과 밤거리를 휘젓고 다니느라 더 바빴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음에 또 루르지역을 방문할 이유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