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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o/[런던건축일기]

[32주차] 모든 공을 안고 있으려 하지마라

x Teo


모든 공을 안고 있으려 하지마라


두개의 주택 확장 프로젝트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4개의 옵션 중에 하나를 건축주가 골랐고, 평면의 세부사항을 조율해 나가고 있다. BIM모델링을 끝냈고 도면 패키지를 만들었다. 

또 하나, 내가 실측을 갔던 집은 1층 확장만을 원해서 비교적 업무량이 적다. 2-3일정도 걸려 BIM모델링을 끝냈고, 세부적인 평면을 그리고 있다.

 

두 프로젝트의 정확한 마감 날짜를 정하지 않고 일을 했더니 효율이 조금 떨어졌다. 

먼저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완전히 끝내지도 않고, 애매하게 남겨둔 채 새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각 클라이언트가 진행이 어느정도 되었는지를 묻는 연락이 왔다.

대략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약간 서둘어서 먼저 시작한 프로젝트의 도면 패키지를 메일로 전송했다.

나머지 프로젝트는 소장님이 다음주 월요일에 건축주와 만나기로 하셨고, 미팅을 위해 사무실을 나가기 전까지 패키지를 완성해야 한다.

 

만약 내가 서둘러 첫번째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은 다음, 건축주에게  패키지를 보냈다면 어땠을까. 아마 다음 프로젝트 하나에 좀더 차분히 집중을 할 수 있었을 거다. 

두 개의 프로젝트를 어정쩡하게 동시에 진행했더니, 갑자기 어느순간 양쪽에서 쫒기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어느정도 끝나가는 단계에 있었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예전에도 소장님께서 해주신 말인데,

가진 공을 모두 내 품에 안고 있으려 하면, 결국은 모두 떨어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릴 수 있는 공은 가능한 빨리 줘버려야지 다른 공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다. 

마치 저글링과 비슷하다. 한 손에 모두 잡을 수 없으면 공 하나를 위로 던져 올리고 그 공이 가까이 내려오기 전에 다른 공을 또 위로 던져야 내려오는 공을 손에 잡을 수 있다.

나는 아직 고작 2개 공으로 저글링을 하는 것도 버벅거리고 있다.

이 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효율적 시간관리를 통해 저글링을 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프로젝트 별 시간관리


매일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몇 시간이 걸렸는지를 엑셀파일로 된 타임시트에 작성을 한다.

RIBA[각주:1]에서는 건축가의 업무에, 경력 별로 차등된 시간 당 Fee를 계산한 뒤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타임시트를 작성하면 각 프로젝트 별로 투자되는 시간을 알 수 있기에 특히 Director가 직원 관리를 하기에 유용하다.


금요일 아침, 소장님이 내 타임시트를 보시고는, 프로젝트 하나에 과도하게 많은 시간이 투자된 것을 보셨다.

매일 시간을 적는 것을 까먹고는 한꺼번에 대충 채워넣었더니 그랬던 것 같다. 


각 프로젝트 별로 소요된 시간을 매일 수첩에 기록하면서, 시간을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소장님께 이야기를 들었다.

학기 중에도 시간관리를 잘 못하고 허튼 시간을 많이 보냈던 나에게, 시간 관리의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함을 절실히 알고 있다.

소장님께서는 수첩에 각 프로젝트별로 소요된 시간을 항상 적으시는 것을 참고 했고, 이제 나도 시간을 체크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겠다.



애정이 없는 프로젝트는 실패를 가져온다


Mike와 CAD로 작성했던 프로젝트는 월요일에 Planning 허가 신청을 넣었다.

그런데.. 몇일 뒤 Planner로 부터 도면을 일부 수정해 달라는 회신이 왔다.

치수를 추가로 넣어달라는 요구와 함께, 스케일바가 빠진 도면에 스케일바를 넣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스케일은 항상 기본적으로 넣는 것인데, 그걸 빼먹었다..

Mike는 Mike대로 몇년 간 자잘한 수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끌어온 이 프로젝트에 큰 신경을 쏟지 않았고, 나 또한 별 흥미도 없고 CAD를 써야하는 짜증나는 프로젝트였기에 별 애정이 없었다.

Planner가 요구한 사항을 수정하고 있다보니,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이 몇 개 더 눈에 띄었다.

프로젝트를 애정없이 대강대강 하다보면, 이런 실수를 하게 됨을 생각하게 됐다. 애정을 가지고 꼼꼼히 살피는 프로젝트에도 실수가 있기 마련인데,  이런식으로 일을 하다가는 우리 회사를 망신 시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신지집 포토북을 받다


작년 3월, 0Fany형과 초대되어 갔던 청도의 혼신지 집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5/07/31 - [0Fany/Review] - 150731 혼신지의 집

내가 런던으로 떠나온 이후, 건축 전문 사진가 헬렌 비네가 DDP와 혼신지 집을 촬영했고, 김현진 소장님은 이 프로젝트로 젊은건축가상을 받으셨다.

그리고 한정된 수량의 포토북으로 만들어진 [혼신지 집]은 판매나 출판없이, 책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주셨다. 

나는 멀리 런던에 있기에 애초에 신청을 하지도 않았지만, 해외에 있더라도 신청하라는 김현진 소장님의 SNS글을 보고 난 뒤, 한참 후 신청했다.

김현진 소장님으로부터 수량이나 우선순위 등의 문제로 보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답장을 받았기에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주에 책이 우리 사무실로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고, 한장한장 사진을 살폈다. Luis도 책에 관심을 가져서 같이 보았다.

나는 직접 이 주택이 얼마나 훌륭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는지 보았지만, Luis는 사진만 보고 그것을 알아채는 것이 신기했다.

나중에 사무실 소장님들도 책을 보고는, 역시나 디테일이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아마 난 사진만 봐서는 시공상의 디테일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갔는지는 알아채지 못했을 것 같은데, 역시 다들 나보다 내공이 뛰어난가보다.

건물의 디테일을 책에 잘 담은 헬렌 비네의 사진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 멀리까지 책을 보내 준 김현진 소장님께 정말 고마웠고, 댓가없이 나눠주신 좋은 기운과 마음을 받아서, 나도 런던에서 좋은 건축들을 만들고 한국에 돌아가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1. 영국왕립건축가협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