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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o/[런던건축일기]

[11주차] 그가 남긴 것.

X Teo

그가 남긴 것.


Alex는 예정대로 떠났다.

그의 마지막 날이었던 금요일에 케익과 와인으로 조촐한 송별회를 가졌다.

이소장님은 Alex를 위해 휴대용 전자키보드를 깜짝 선물로 준비하셨다. Alex가 그리스에서부터 가져온 키보드를 꺼내서 두드려 볼 시간조차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찍이 준비해 두셨단다. 

소장님의 선물도 Surprise였지만, Alex도 깜짝 선물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각자에게 어울리거나 관심사에 맞는 책을 하나하나 골라서 포장까지 한 책이었다.

나에게는 함께 대화를 나눈적이 있는 Calvino의 Invisible Cities를 주었다. 아주 흥미로운 구성의 소설이다. 조금 난해하다는 말도 있던데 영어로 내가 이 책을... 꼭 읽어내야지..!!

모두가 함께 적은 편지를 Alex에게 주었고, 나는 파리에서 사온 Le Corbusier 색연필을 주었다.


사무실에서 송별회를 마친 뒤, 우리는 단골 펍으로 갔다.

펍 앞 골목길에 서서 맥주를 여러잔 비웠다. 

런던에 물씬 찾아온 봄 기운을 맞이했고, Alex를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가졌다.


나는 Alex가 우리 사무실에서 대체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서버나 컴퓨터에 관련되어서는 Alex를 통해서만 온전히 제어가 되었고, 소장님들과 새로운 비전을 준비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무소에서 Alex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Alex가 결국은 떠났다..


Tender Package를 끝낸 뒤 Alex는 마무리 작업과 인수인계를 준비했고, 나는 백소장님과 함께 또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래서 월요일이 지나가고 화요일이 지나고 일주일동안 내 옆자리가 비어있었음에도 나는 이전과 다름없이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던 것 만큼 나에게 더이상 Alex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닳았다.

2달반의 시간동안 함께 일을 하고 배운 덕분에, 이제는 나 혼자서도 대부분의 것을 처리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소장님이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시는 대부분은 이미 Alex에게 배웠다. 

송별회 자리에서도 Alex가 나를 잘 이끈 덕분에 고작 3학년을 마치고 한국에서 온 내가 기대 이상으로 Tender Package 작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여러번 화자되었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나는 정말 좋은 사수를 만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