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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o/[런던건축일기]

[30주차] 헤어짐 그리고 만남

x Teo


헤어짐 그리고 만남


이번주에 내가 진행한 건축 프로젝트는 3개다.

종종 Mike가 필요할때 돕는, 클라이언트가 4년째 질질끌고 있는 주택확장 프로젝트인데 Bloody AutoCad What I hate를 써야한다..

나머지 둘도 Side Extension이나 Loft Conversion을 하는 주택확장 프로젝트다.

이번주도 이런저런 일들도 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헤어짐


두달 전 처음만난 MD, MK 두 사람이 이번주로 실습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목요일이 마지막이었고, 따로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던 소장님이 나까지 포함해서 뉴몰든으로 데려가 회를 사주셨다.

런던에서 회를 먹다니. 한국만큼 신선한 해산물이 보기가 쉽지않을 뿐더러, 굉장히 비싸서 먹기 힘든 음식이다.

회를 비롯한 여러 맛있는 한국음식에 소주를 곁들이면서, 두 사람이 실습기간 동안 우리를 도와준 시간들을 돌아보고 격려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며 훈훈한 술자리를 가졌다.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며.



 Site Survey를 다녀오다.


금요일에는 처음으로 실측을 다녀왔다.

나 혼자가서 해보라고 소장님께서 믿고 맡기셨으나사이트가 소장님 댁에서 가깝고, 약속시간이 금요일 퇴근 직전으로 잡혀서 소장님과 함께 갔다.

한국에서 작은 한옥 몇 채를 실측한 경험이 있고, 런던의 지금 사무실에서 일하기 전에도 상점하나를 실측한 뒤 Planning 도면을 그린적이 있긴하다.

하지만 주택 하나를 실측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첫 실측은 소장님과 함께한 덕분에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고, 다음번에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어떤 일을 할때는 큰 그림을 먼저 알게 된 후에 세밀한 부분을 보아야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소장님이 가끔 하시는 말씀이지만 이번 실측에서 나는 또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일을 하는 실수를 했다. 

나의 경험으로는, 집 전체를 먼저 대강 그려놓은 후 실측을 하면 빼먹고 실측을 안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작은 부분부터 하나하나 수치를 재면서, 실제값을 반영해서 모눈지에 그려나갔는데, 그렇게 실측을 했더니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다.

내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을 보신 소장님께서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실측을 하라고 설명 해주신 덕분에 늦지않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이 실측 해온 것을 많이 보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모델링도 해보았기 때문에 어떤 치수가 어떻게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예전에는 내가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이걸 바탕으로 다음주에 모델링을 해야하는데, 혹시나 빼먹었거나 실수한 부분이 있진 않을까 걱정된다.




이번 실측을 통해 직접 그 집에서 어떻게 사는 지 있는 그대로를 내 눈으로 본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영국 주택은 긴 뒷마당을 가지고 있다. 마당이 없는 Flat[각주:1] 등의 집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마당도 없는 집’으로 격하되어 불린다.

늦은 오후, 가족 모두가 뒷마당에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간단한 다과와 함께 음료를 마시고 있었고, 주말을 맞아 놀러 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가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있었다.

평면에 Reception Room이라고 적던 현관 옆 방에는 카펫과 쇼파가 놓여져 아늑한 휴식 공간이었고, 뒷마당을 향해 유리문과 큰 창이 달린 Family Room은 테이블과 함께 아이들의 장난감이 어질러져 있었다.

Living Room이 아닌 Reception Room이라는 단어는 영국에서 부동산업자들이 만든 말이라고 사전에 나오지만, 단어의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그 공간을 사용자들이 어떤 차이를 두고 사용하는가 이다. 

영국주택은 방이 작은 편이지만, Living Room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을 수 없는 두개의 다른 공간과 뒷마당을 보며, 다양한 성격의 공간을 잘 활용함을 알 수 있었다.

1층은 Reception Room, Family Room 그리고 주방, 그 뒤로는 마당이 있어서 1층 전체가 가족의 공용공간이다. 

그 윗층으로 침실들이 있는데, 집 면적의 절반이 공용공간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소통이 줄어들고, 세대간의 갈등이 점차 커지는 것은 우리가 사는 집의 공간이 그렇게 만든 것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영국사회에선 세대간의 격차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집에 대한 생각


요즘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요리가 최고의 주제인 것 같다. 먹방이 대세이더니 백종원의 설탕이 휩쓸었으며 셰프들이 최고의 엔터테이너다.

인간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에서 옷과 먹는 것 만큼은 우리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먹는다는 것, 요리라는 것은 하루에 몇번이나 고민하고 의식하며,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행위다. 

하지만 마지막 ‘주’. 집과 공간에 대해서는 아직 그 중요성을 잘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부동산-재산으로 밖에 보지않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하면 집이라는 삶의 공간과 건축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고, 그 중요성을 체감 할 수 있을까. 


실측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전 잠시 공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만남, 8월의 Monthly Event


파트너로 새로 합류하신 양소장님이 최근에 활발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Kings Cross 뒷쪽, 직접 맡으셨던 프로젝트에 대해 PT를 하셨다.

런던에서 수없이 지어지고 있는 Apartment[각주:2]들의 설계 과정 속에서, Client - Council 그리고 건축가에게 주어진 컨텍스트 그 사이를 오가며 고군분투하는 상황을 잘 느낄 수 있는 PT였다.


이번달에도 새로운 인연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Alex도 왔다.

하지만 이번 이벤트가 나에게 조금 더 특별했던 이유가 있다.

런던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적는 이 일기를 보고, 댓글이나 메일을 주신 분들이 몇 분 있다.

그 중에 Nottingham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있는 MJ씨가 이벤트에 오기로 한 것이다.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낸지는 꽤 시간이 지났지만, 노팅햄에서 런던까지 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무실에 갑자기 미인이 한 분 들어오길래 보았더니, 프로필 사진으로만 보았던 MJ씨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한번에 알아봤다.

이벤트 중간중간마다 준비를 하고 정리를 하느라 옆에서 많이 신경써주지 못해 미안했지만, 모자란 맥주와 와인을 사러나가는 길에 나와 같이 가겠다고 함께 길을 나서 준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제 막 졸업을 한 MJ씨는 취업때문에 고민이 많은 듯 했다. 

기업들의 사회초년생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취업문제는 한국과 영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장님꼐서는 최근 런던의 건축경기가 좋기 때문에, 조금만 시간을 가지고 찾아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고 MJ씨를 응원해 주셨다. 

얼마전에 KK형도 취업이 잘 되었고, MJ씨 또한 잘 될거라 믿는다.

 

그리고 또 한사람, JH누나가 사무실에 왔다.

JH누나는 내가 우연히 사람들을 모아서 펍에 가게 된 날 처음 만났다.

워낙에 성격이 좋은 누나라서 처음 본 날부터 친해졌고, 같이 Wales 여행을 갔던 멤버 중 한명이기도 하다. 

누나는 조경을 전공했지만, 작은 건축사무소에서 도면을 그리고 있다. 

뉴몰든에서 온 누나가 무려 족발과 순대를 사왔다. 한국에서는 새벽12시에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런던에서는 먹기 힘든 음식이다.

사무실 식구들, 이벤트를 온 손님들까지 모두 너무나 기쁘게 나눠 먹었다. 

여러모로 누나 덕분에 이날 이벤트가 더 신났다.

 

이전에도 종종 내가 아는 사람들을 사무실 이벤트에 초대 했었다.

이번달에는 얼굴도 본적 없던 MJ씨 그리고 JH누나까지. 한번에 두명이 이벤트에 와주었다.

아는 사람 한명없이 런던 땅에 왔던 내가, 어느새 꽤 많은 인연을 만들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어딘가를 가게되면, 그 곳에 누가 사는지를 떠올려 보고 연락을 해서 같이 식사나 술을 마실 수도 있게 되었다.

미술관이나 여행을 가는 것은 이제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 만큼은 언제 어느때에도 기다려지고 즐거운 일이다.






얼마전에  SJ누나가, 자신은 사람중독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것은 아니지만, 자꾸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고, 서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고 싶다.

끈끈한 정이 있는 가족과 오랜 친구들이 옆에 없기에, 그 부족함을 자꾸 채우려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핍은 나를 강하게 만들고, 나를 성장시킨다고 믿어왔다. 이 낯선 런던에 나 스스로를 내던진 이유도 그것이었다. 

날씨탓일까. 가끔은 우울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잘 지내고 있다.

 

 

나도 명함이 나왔다.



정보를 모두 지워버리면 더이상 명함이 아니구나.




  1. 임대아파트가 대부분이고 저층 복도형 그리고 각 집마다 복층인 경우가 많다. 1층은 공용공간, 윗층은 사적공간으로 이루어지는 등 영국주택과 거의 동일한 공간구성을 가진다. [본문으로]
  2. 영국에서 아파트먼트는 주로 최근에 지어지는 고층의 고급 레지덴셜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오피스텔과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원래 Apartment의 단어는 왕이나 공주 등이 사는 호화로운 방을 뜻한다. 현재 왕실의 공식 거주지인 윈저성의 Royal Apartment도 여왕의 거처를 의미한다. 이 단어가 미국으로 넘어가 흔히 우리가 쓰는 단어로써의 아파트가 되었고, 영국에서는 Flat과 유사한 개념이다. 그리고 최근 영국에서 지어지는 레지덴셜이 Flat과의 차이를 두기위에 Apartment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