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pentine Galleries를 다시 찾았다.
지난번 찾았을때 완성되지 않았던 올해의 Pavilion이 드디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Zaha Hadid의 작업도 보고, 행위예술가 Marina Abramović의 퍼포먼스도 체험하고 싶었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Hyde Park 내에 두개의 건물을 가지고 있다.
자하가 작업을 한 곳은 The Magazine(무기고) 였으며, 후원자의 이름을 따서 Serpentine Sackler Gallery라 부른다.
갤러리 내부에는 Ed Atkins라는 작가의 다소 섬뜻한 디지털 작업이 전시 중이다.
자하가 디자인한 사진 좌측의 증축 공간은 The Magazine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며 레스토랑으로 운영 중이다.
그냥 자하 건물이다. 이것도 뭐 솔직히 자하가 직접 디자인 한건지 사무소의 누군가가 작업 한건지는 모르겠다.
내부에는 천창도 있고 공간감이 꽤 좋아보였다.
영화 속 미래의 우주선같은 곡선이 멋들어지긴 했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2000년, 후원의 밤 행사에 임시로 쓸 천막이 필요했고, 그 당시 주목받기 시작한 자하에게 디자인을 맡기게 된다.
행사가 시작되면서 천막의 디자인이 엄청난 관심을 끌게 되었고, 건축가를 초청해 파빌리온을 공개하는 것을 연례 행사로 만들었다.
이때 자하와의 인연으로 사클러 갤러리도 그녀와 함께한 것이다.
Serpentine Pavilion 2000, Zaha Hadid
서펜타인의 파빌리온 작가 선정은 영국 내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한 적이 없는 해외의 건축가를 소개한다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영국이 아시아 국가나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했을때 다양한 현대 건축가의 프로젝트가 흔하지 않기에, 해외 건축가의 작품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토요 이토, 오스카 니마이어, 프랭크 게리, 렘 쿨하스 등의 건축가가 서펜타인 갤러리와 함께 파빌리온 작업을 했다.
올해는 칠레의 건축가 Smiljan Radić이 선정되었다
4년 전 그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이기적인 거인'에 등장하는 거인의 성을 컨셉으로 마스킹테잎을 이용해 모형을 만든 적이 있다고 한다.
손으로 투박하게 만들어진 그 모형의 느낌이 썩마음에 들었는지 그때의 작업을 떠올리며 이 파빌리온을 만들었단다.
이번 파빌리온과 오스카 와일드 소설 속의 '거인의 성'은 개념적으로 관계는 없는 듯 하다.
이기적 거인은 누구나 읽어봤을 법한 내용이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정원에 담장을 치고 아이들이 놀지 못하게 했더니 겨울이 계속 되었고, 아이들이 다시 들어오자 봄이 돌아왔다는 그 이야기.
한국인 혹은 동양인이라면 이걸 보고 고인돌을 떠올릴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전혀 고인돌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인지, 건축가가 의도적으로 고인돌이라는 표현을 회피하는 것 인지.
건축가는 '채석장의 큰 돌위에 깨질 듯한 조각을 올려 놓은 형태'라고 표현하고 있다.
고인돌이 아닌 '고인 껍질'이란 말이다.
사용된 재료와 구축방식을 보면 틀린말은 아니다.
내부에서는 간단한 음료와 음식을 팔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주 가볍고 반투명한 유리섬유를 이용해 만들었다.
건축학도라면 누구나 익숙한, 미색의 종이테이프가 떠오른다. 그가 테이프로 만들었던 모형과 유사한 느낌을 내는데에는 성공한 듯 하다.
형태가 고인돌을 닮았다고 생각해서인지, 내부는 먼 옛날 인류가 살았을 동굴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건축가에 말에 의하면 저 창은 공원과 소통하고, 내부의 인테리어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프레임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자동차와 큰 가로수 뿐이어서, 창이 향한 방향 때문에 전혀 설득력이 없게 느껴졌다. 개념적인 제스쳐일 뿐이었다.
외부에서 볼때는 뭔가를 뿜어내는 듯한 느낌도 있다.
공원과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참 보기 좋지만, 사실 저 사진을 찍은 직후 뒷쪽에서 뛰던 아이가 넘어졌다.
파빌리온 내부로 연결되는 데크와 지면의 높이차이 때문에 발을 헛디딘 것이다. 바닥이 흙이라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 이었다.
잠깐 머물렀음에도 그보다 위험한 순간은 또 있었다.
내부의 가운데에 개방된 부분이 보일 것이다.
가느다란 난간이 멋들어지게 붙어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난간에 기대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 분이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한쪽 다리가 데크에 걸렸고 정말 크게 다칠뻔 한 사고였다. 다시 올라올 수 있게 친구들이 도왔지만 떨어지면서 바닥과 난간에 부딪혀, 고통스러워 했다.
비록 임시 구조물 이지만 군데군데 안전사고가 일어날 여지가 많았다.
내가 찾았을때는 개장한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만큼 안전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묵직한 물체가 아래에 있다
더 크고 묵직해 보이는 물체가 마치 떠 있는 듯 하다
묵직해 보이지만,
어쩌면 깨질 듯 얇은 껍질과도 같다
사람들이 주변에 모인다.
흙을 쌓아 외부를 반쯤 감싸안은 언덕을 오르면
휘감기듯 내부로 들어간다.
내부를 향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뿜어내려는 듯 하다
잘 가공된 금속테가 내부공간을 감고 있지만
덕지덕지 붙은 반투명 조각들이 외부형태를 완성한다
형태와 공간은 칼같이 떨어지지 않는다.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하고
포근하고 얼금얼금한 빛 속에 안긴다.
그걸로 충분하다.
스밀한 라딕은 건축계에 그의 이름을 확실히 알리게 되었고,
서펜타인 갤러리는 올해도 새로운 건축가를 소개하며 주목을 받았으며, 카페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 까지도 성공했다.
좋은 작품이긴 했지만 크게 감흥이 느껴지진 않았다.
직접 내 눈으로 보고 공간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설 건축물임에도 너무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명확하지 않은 개념과 칼같이 떨어지지 않는 형태가 익숙치 않아서일까.
서펜타인은 좋은 작가를 소개했고, 건축가는 최선을 다했다.
이제 스밀한이 어떤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지 기대 해 볼 차례가 아닐까.
- 스밀한 라딕의 작품들
파빌리온에 머물고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갤러리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Marina Abramović의 퍼포먼스 작품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현재 활동 중인 가장 유명한 행위예술가 중 한명이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있었던 퍼포먼스의 영상을 통해 그녀를 알게 된 사람이 꽤 많을 것 같다.
무려 3개월 동안 매일같이 진행된 이 퍼포먼스는 참가자들과 1분씩 눈을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수많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어김없이 한 남자가 그녀의 앞에 마주앉았다.
갑자기 그녀의 표정에 변화가 생기며 묘한 웃음과 함께 눈물이 터진다.
그는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Ulay다.
그들은 10여년간 사귀어 왔지만, 함께 찾았던 중국에서 울라이는 새로운 연인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 이후 그녀는 힘든 시간을 보냈고, 점차 자신의 경력을 쌓아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이 퍼포먼스로 울라이를 재회한 것이다.
많은 순간들이 그녀의 눈앞을 스쳤을 것이고 눈물이 터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나도 이 퍼포먼스를 통해 그녀를 알게 되었다.
Ulay를 재회한 1분은 다를 것 없는 60초의 순간이지만 그때 그녀의 표정은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10여년을 한번에 담는 1분이었다.
여튼,
줄을 서서 내 순서를 기다린 후 입장했다.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퍼포먼스 이기에 내부에 인원을 통제 했던 것이다.
이 퍼포먼스의 이름은 512hours.
64일간 계속되는 이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시간이다.
핸드폰과 카메라를 포함한 전자제품과 소지품은 락커룸에 모두 보관해야 한다.
내부로 들어가자 아주 고요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채 서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이끌었다.
무리 속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는 눈을 감은 뒤 천천히 숨을 쉬라고 속삭였다.
이 상황이 너무나 낯설었고,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언제까지 그렇게 있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명상은 커녕 잡생각만 가득한채 3분도 채 되지 않아 내려왔다.
이게 뭘까 혼란스러웠다.
명상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양쪽으로 하나씩 방이 있고, 각각의 또다른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먼저 가본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 두종류의 곡식을 분류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눠준 종이게 뭔가를 체크하는 듯한 사람도 있었다.
역시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기다린 뒤 빈자리로 안내를 받았고, 두 곡식을 분류하고 갯수를 세라고 속삭였다.
맙소사. 다른 관객들도 정말 이걸 모두 분류하고 세었단 말인가??
하.. 그래 일단 해보자. 베트남 쌀과 그보다 조금더 큰 검정색의 또다른 곡식을 서로 분류했다.
나는 아예 하나는 포기하고 쌀알만 세기로 마음 먹었다.
세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마치 군복무 기간에 야간 경계 근무를 서면서 온갖 생각이 들듯이 말이다.
게다가 나는 지금 가족, 친구와 떨어져 이 먼곳에서 지내고 있으니 더욱 그럴 수 밖에.
그리고 마침내는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졸면서 분류를 끝냈고, 쌀알의 갯수를 세었다.
졸면서 했으니 정확하지도 않았다. 나눠준 종이에 쌀알의 갯수를 적었고, 간략한 소감을 적었다.
너무 졸렸다고-_- 갯수는 1000개가 넘었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퍼포먼스가 이루어 지던 방으로 왔다.
이제는 이 퍼포먼스들이 차츰 익숙해졌고, 왠지모를 평온함을 느꼈다.
백색으로 칠해진 그 방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과 전자기기가 내는 소리나 사람들의 말소리도 없는 그 공간에서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 할 수 있는 명상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로의 숨소리가 서로를 위안했다.
이제 이 퍼포먼스에 나도 빠져들고 있음을 느꼈다.
또다른 방에서는 사람들이 아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안내자는 나에게 숨을 천천히 쉬도록 유도했다.
그 숨결을 느끼며 아주 천천히 한발 한발, 행동 하나하나를 이어나가게 했다.
평소에 발걸음이 빠른 나에게, 그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발걸음을 옮기는 나의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에 온 정신을 집중해 그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즐길 수 있었고, 그 순간 너무나 평온했다.
모든 퍼포먼스를 체험한 뒤, 사람들이 명상하는 것을 한쪽 구석에서 지켜봤다. 그것 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그때,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보였다!!
그녀 역시 이 퍼포먼스의 일부로 그 행위들을 하고 있었고, 안내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녀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한장의 사진도 남길 수 없었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경험이었다.
파빌리온을 보기위해 서펜타인을 찾게 된다면,
그녀의 퍼포먼스에도 꼭 동참해 보길..!
서펜타인의 홈페이지에서 그녀가 남긴 동영상을 보니까, 항상 그녀가 퍼포먼스를 함께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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