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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o/[런던건축일기]

[12주차] Keep Calm and Carry On

X Teo


Keep Calm and Carry on


Alex가 떠났지만, 사무실은 계속해서 바쁘고, 더 바빠지고 있다.

그간 도움이 필요할때마다 사무실에 간간히 들러주시던 양소장님이 조만간에 Partner로 합류할 예정이고, 2명의 직원도 새로 들어올 예정이다.


이번주에는

사무실에도 한가지 사건이 있었고, 나의 마음을 흔드는 사건도 하나 있었다.


이소장님께서 SP누나가 조사한 Development의 사례를 보다가, 굉장히 눈에 익은 프로젝트를 하나 집으셨다.

우리 사무소에서 몇년 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와 굉장히 유사한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몇년 전의 프로젝트를 서버에서 찾아서 비교 해보았더니 정확하게 우리 회사가 초기 계획단계를 진행했던 프로젝트였다. 

우리 회사와 함께 일을 진행하던 Developer가 몰래 다른 건축가와 일을 마무리 했던 것이다!

당시 실시설계까지 우리가 맡는 조건으로 굉장히 저렴하게 계획도면을 제공한 프로젝트였다. 

우리에게 저렴하게 계획안을 받은 후, 그 계획안을 가지고 다른 건축가와 실시설계를 진행해서 프로젝트를 완성한 것이다.

변경된 것 조차 없이 계획안 그대로!

서로간의 신뢰와 약속을 어기고, 설계비를 아끼려고 그런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우리 사무소와 꾸준히 함께 일을 진행하고 있는 Developer다.

우리 사무소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쓴 종이값도 안나올 낮은 보수를, 신뢰와 약속을 바탕으로 감내했던 것이다. 한두개의 프로젝트만 함께하는 건축주도 아니었기에.

그런데 이 디벨로퍼는 뒤에서 딴짓을 하고 있었다. 이런 짓이 얼마나 더 있을지 없을지는 소장님들이 다 확인할 수도 없다고 한다.

지금도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디벨로퍼이기에, 그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고 계신다.


영국은 여러면에서 굉장히 선진화 된 시스템과 문화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우리와 별 다를 것 없는, 아쉬운 면모들과 마주하기도 한다.

이런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은 한 개인의 행동과 가치관에 의한 것 이지만, 그러한 행동의 바탕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물신주의 혹은 삐뚤어진 수요와 공급의 차이나 갑을관계에 의한 것일 때가 많다.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찾아오면서 시대가 바뀌었던 것은 가치관과 기술의 급격한 변화가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애써 근대를 끝내고 현대를 살려고 하지만, 진정 시대의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왕권과 종교의 시대는 자본에 의해 끝이났다. 그것에 반기를 들었던 사회주의도.

자본, 그 위에는 무엇이 있으며 그 보다 강한 힘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까.

진정 새로운 시대를 맞게 해줄 새로운 가치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의 마음을 흔든 사건은 목요일 백소장님과의 대화였다.

소장님 두분이 잠깐 사무소 앞에 나가계셨고, 모든 직원이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했다. 나는 혼자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프로젝트를 잡고 있던 손을 놓기가 쉽지 않았고, 집에 인터넷이 안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무실로 돌아오신 백소장님이 맥주나 한잔 마시러 가자고 하셨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백소장님이 고등학교를 졸업 후 AA에 입학을 하기까지의 과정에는 내가 상상도 못했던 다이나믹한 사건들이 있었다.

주변에서 본 런던 유학생들은 편하게(노력도 있지만, 일단은 집에 돈이 많아서) 온 경우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은연중에 나는 그것을 소장님에게도 대입하고 있었다. 소장님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더 멋진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마주해야 할 문제들, 학교에 대한 아쉬움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소장님은, 건축을 하는데에는 수많은 방법론이 있는데, 본인에게 맞는 것을 찾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하셨다.

그러고보니 그동안 나는, 건축설계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의구심에 건축가가 아니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나의 판단의 근거는 우리학교에서 교육받은 방법론에 의한 건축설계였고 어떤 건축가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부족했다.

AA에서 다양한 방법론을 가진 여러 튜터를 각자가 골라서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부럽다고만 생각했지, 나에게 맞는 건축의 방법론을 찾아서 건축가가 되리라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우물안에서는 알 수도, 깨닳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런 아쉬움과 고민 속에서는, 하루 빨리 외국으로 나와서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 소장님의 말씀이었다.


나에게 남은 학사과정 2년을 마치는 것이, 졸업장을 받는 것 이상으로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서 그 졸업장이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늘 학교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깨닳았다고 생각하기에 그 졸업장을 위해 학교에 갇혔을때 오는 그 답답함이 싫다.

학교는 자양분과 울타리가 되어주지만, 딱 그만큼의 성장만 시켜줄 수 있다. 그 이상은 스스로의 노력과 결단을 필요로 한다.

유학이 되었건 다른 무엇이 되었건, 학교의 남은 2년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나는 어떤 것도 감내할 생각이 있다.


이런저런 많은 고민이 겹쳐, 당장은 무엇을 결단 내리기 힘들다.



Limehouse Cut, London



땅 위에 길이 있지만, 때로는 물 위에 길이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