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o/[런던건축일기]

[5주차] Revit을 잘쓰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자.

X Teo


5주차


수없이 많은 수정을 거친 뒤 Semi Detached house를 통째로 확장하고 평면을 변경하는 프로젝트를 끝냈다.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부터 그냥 무시하거나 덮어두고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다. 

CAD로 도면을 그렸기에 더 많은 실수가 있었고, 나의 꼼꼼하지 못한 성격을 탓하기도 했다.



Victorian Semi-Detached House



육각형의 절반이 밖으로 돌출된 형태를 가진 집이 Victoria 여왕 때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Victorian Style이라고 한다. 

Victorian Style이 아닌 것 보다 좀더 고급스러운 것으로 친다.

Semi-Detached는 두 가구가 한 건물에서 대칭으로 붙어있는 주택을 말한다. 우리에게 땅콩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주택의 원형이다.



과연 내가 건축가가 될 수 있을까? 이게 정말 내 평생의 일일까?

이 고민을 시작한지 어느새 5년이 가까워 오는 것 같다. 아직도 답은 내리지 못했다.

사무실에 앉아서 하루종일 모니터만 들여다 보고 있으면 정말 답답해 미칠 것 같고, 평생 이 짓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의 수많은 업무 중에 일부일 뿐이지만 일단 지금 내가 맛보고 있는 건 그것 뿐이니까.

나의 성격이나 감각 그리고 인생의 가치관에 있어서 건축가가 나의 길일까..



소장님과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눈 적이 있었다.

직원들과 프로젝트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이 길이 너의 길이 아닌 것 같거나 당연히 해야할 것을 못하겠다면 빨리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는게 서로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농담같은 진담을 하신다.


그런데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내가 좋은 건축가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하셨다.

아마 첫날에 내가 트레싱지에 미친듯이 많은 평면을 그렸던 것이 나에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시게 한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시려고 그냥 하신 말인지도 모른다.


소장님 말고도 내 작업을 본 뒤 좋은 건축가가 될 자질이 보인다고 말해준 분이 한 분 더 계신다.

내가 만약에 건축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혹여나 인생에 좌절을 맛보게 된다면 그건 다 두 분 때문이다ㅋㅋㅋ 



BIM이 등장한 이래로 CAD로 도면을 그리는 건 정말 무식한 방법이 되버렸다.

평면과 입.단면이 서로 유기적이지 않은 도면 작성은,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수많은 오류를 만들기 쉽다.


그에 반해 BIM은 도면과 모델링 등이 실제로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이, 완벽히 유기적이다. 

그래서 정작 도면 한장을 출력하기 위해서 더 많은 품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Revit으로 작업을 할 것인지 CAD로 작업을 할 것인지 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Revit을 다루는 것이 실무에서 쓰기에는 아직 조금 부족하기에, 내 손에서 완벽하게 제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3D에서부터 출력 된 2D 도면 위에 추가로 2차원의 선이나 면을 덮어서 디테일한 부분을 수정해 도면을 출력하기도 다.


완벽히 제어를 할 수 없는 툴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에 소장님은 차라리 CAD로 도면을 작성하면 어떻겠냐는 말씀이셨다.



나는 CAD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앞으로 건축설계는 모두가 BIM으로 분명히 넘어갈 것이고, 가깝게는 내가 학교에 복학을 한 후에도 모든 프로젝트를 Revit으로 진행 할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떻게든 Revit을 더 많이 만지고 더 익숙해 지는 것이 필요하다. 

2년 전, 앞으로 Revit만 쓰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항상 유효하다.

일단 CAD는 프로그램을 켜서 선을 긋는 순간부터 원시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만지기기 싫어진다. 

Revit에 버릇이 들어버린 것이다.



실무에서는 나 개인의 사정보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나는 소장님을 설득해야 했, 사무실에는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BIM을 사용할 때 모든 도면이 유기적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실수나 오류를 줄일 수 있음을 어필하며, 앞으로는 제대로 된 모델링으로부터 출력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소장님과 나는 좀더 생각을 해본 뒤 다음날 아침에 결정하기로 했다.



다음날 출근을 하니, Alex가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하기에, 구렁이 담넘어 가듯이 Revit으로 스윽 진행 해버렸다ㅋㅋ

소장님도 특별한 말씀을 하지않으셨기에 일단 두고 보시는 것 같다.



이번에 맡은 네번째 프로젝트는 내가 했던 모든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그리지 않은 것부터 모든 것을 꼼꼼히 체크했다.

그리고 허가를 받기위해 필요가 없는 부분은 과감히 버렸다.


소장님께서 자주 하는 비유 중에, 변호사와 판사의 재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재판에서 이기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이를 건축가에게 대입을 하면, 우리는 허가를 받기에 유리하도록 도면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사실성에 중점을 두고 그대로를 완벽하게 그리는 것은 스스로를 재판에서 불리한 방향으로 내몰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도면을 허위로 작성한다는 것이 아니라, 표현방법에 있어서 충분히 유리한 방법으로 표현을 할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한 것을 도면에 모두 그려서 판사를 혼란 스럽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방을 뒷쪽으로 1.5m정도 확장하고 천창을 만드는 작은 프로젝트라서 몇일 만에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 다음엔 또 어떤 프로젝트를 하려나 했더니, 벌써 그 다음에 내가 진행할 프로젝트는 이미 정해져 있더라.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주방을 확장하는 프로젝트다.


200년 넘은 주택이 수두룩한 런던에서는 주택을 개조하는 프로젝트가 정말 많이 진행되고 있다.

집은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다듬어지고 변화되면서 그 생명력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건강한 문화다.



출근길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런던의 북쪽이고, 사무실은 동쪽에 있다.

그래서 출근하는데만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다.

지하철로 환승을 한번 해야하고 걷는 시간까지 하면 넉넉히 그정도다.


아침 출근시간에는 서서 지하철을 탈때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같은 방향을 가거나 혹은 나와 반대방향을 향해 바삐 움직인다.


사람들이 많은 공간과 길을 벗어나, 사무실로 가는 마지막 골목길은 나에게 왠지모를 편안함을 준다.

단순히 도착지에 다와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길은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나의 발바닥 정도 크기의 돌들이 깔려있다.

아침이면 10살 남짓의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등교를 하는 길이고,

저녁 6시가 되면 저 작은 펍에 직장인들이 복작복작 모여 하루의 피로를 푸는 길이다.


그냥.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있는 길이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