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혼신지의 집 포토에세이]
학수고대하며 내 순서는 언제쯤 올까? 보내주기로 노력하겠다는 짧은 답변은 오히려 더욱 소유욕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몇 일 지나서 페이스북에 혼신지의 집 포토에세이를 저마다 인증샷을 통해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부러웠다. 그래서 나는 언제오지? 라며 선생님께 "혹시라도 나를 잊었을까? 아니면 주소를 못보셨나?" 재차 확인을 하며 다시 메일을 보내며, 독촉 아닌 독촉을 한 것 같았다. 무슨 낯짝인지...매일 우체통을 확인하다가, 발견된 노오란색 서류봉투.
유년시절, 어머니께서 시장에 장을 보고 오실때 무심하게 툭 던져주면, 그저 좋아서 꼬리부터 뜯어 먹었던 붕어빵 봉투와 같았던 그 봉투에는 SPLK 가 적혀있었으며, 드디어 왔구나!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개봉해보았다. 캔버스천(생각해보니 두개의 매스를 내외부로 연결했던 2층에 얹혀진 외벽매스의 색상과 흡사하다.)과 같은 소재로 감싸져 있는 포토에세이.
보일랑 말랑하는 내성적인 책의 타이틀과 함께 뒷면에는 혼신지의 집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새겨져있다. 정제된 몇마디의 글보다 시각적 경험으로 혼신지의 집을 소개하겠다는 의도였을까? 기다린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견딜 수 없는 기대감과 함께 책장을 넘겨보았다. 슬며시 훑어보며, 날씨 좋은 어느 날 여유있게 커피 한 잔과 함께 정독을 하기로 하고 잠시 책을 덮어 두었다.
그리고, 작년 그 날을 다시 회상하며 찬찬히 오버랩시켜 보기로 했다...
답사를 마치고 언젠가는 업로드 하겠다라고 마음 먹었던 사진, 혼신지의 집 전경
다이어리의 기록을 보면 2014년 03년 27일 청도에서 공간학생기자들과 함께 청도로 MT를 갔었다. 사실 광주에서는 경북을 가기에는 다소 벅찬 거리와 교통환경이다. 특히 88고속도로에서 밤샘 작업을 하고 도로 위에 몸을 맡겼더니 더욱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즐겼었던 23일의 청도와 바로 일주일 뒤에 우연히 계획이 잡힌 김현진 선생님과 만남이 있었다. 김현진 선생님과 알게된 계기는 페이스북으로 였지만, 혼신지의 집같은 경우는 선생님이 업로드한 한 장의 사진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장실로 보이는 공간. 세면대 위에 설치된 거울에 반사된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반대편 풍경이 보고싶었고, 선생님은 친절하게 궁금증을 해소해 줄만한 사진을 덧붙여주셨다. 그래서 연이 닿아 이렇게 현장까지 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하지만, 약속으로 잡혔던 3월 30일... 바로 며칠전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했다. 부산에 계시는 고모가 돌아가셨다. 유독히 고모는 어머니와 자주 통화하시며, 항상 고향이 아닌 타지에 나와 사는 우리 가족을 걱정해주셨었다. 그런 고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던 그 날. 3일장과 함께 발인까지 나는 고모와 함께하며, 비오는 날의 영락공원에서 아버지의 배웅을 뒤로하고 마을버스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해 조금은 무거운 마음과 몸을 이끌며, 대구역으로 향했다. 대구역에서 Teo와 만나 함께 청도를 가기로 했다. 씻지도, 여벌의 옷도 챙기지 못하고 온터라 그닥 상태가 좋지 않아 처음 만나는 선생님에게 실례가 아닐까 걱정을 하며 다가 온 혼신지.
차를 주차하고, 저기 창문 안으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여자분이 이리저리 돌아다니신다. 아...드디어 만나게 되는구나. 가상공간에서 알게되 현실에서 만나는 경험이 처음이라 더욱 기분이 묘했다. 짧은 인사와 함께 다른 일행도 온다니 밖에서 조금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었다. 바로 본론부터 혼신지의 집을 소개해주신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바로 "대지면적은 이렇고, 대지의 경계는 이렇게 되고, 재료는 왜 이 돌을 사용했으며...", 다소 문화충격이었다. 미사여구 없는 혼신지의 집 소개로 묘한 기분을 함께 안고 답사를 시작했다.
ⓒ Hélène Binet
ⓒ Hélène Binet
ⓒ Hélène Binet
ⓒ Hélène Binet
ⓒ Hélène Binet
ⓒ Hélène Binet
혼신지의 집 사진은 런던을 베이스로 한 건축사진작가 Hélène Binet가 작업했다. 헬렌비넷은 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과 작업을 해왔다. 그녀의 포토그라피만 보더라도 프리츠커상을 탄 건축가들만 해도 여러 명이며, 알바 알토, 르코르뷔제 작품들도 촬영을 했다. 그중, 나는 피터줌터의 쿨룸바 뮤지엄과 채플의 사진을 참 좋아했는데... 비네의 작품이었다니... 구글 검색창에 Hélène Binet 라고 검색하면, 이미지칸에 어마어마한 내공의 사진이 수도 없이 뜨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동대문디자인프라자와 함께 혼신지의 집을 담으러 한국을 왔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액수가 들어간 대규모 문화시설과 함께...이 작은 시골마을에 주택을 담으러 온다니...극과 극이다. 하지만, 자본 vs 정성의 구도로 저울질 해본다면... 그녀의 가치판단의 저울질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을 것 같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으로 오묘한 조화다. 사실 이렇게 불편한 풍경은 적응이 안 된다. 풍경과 함께 가장 잘 어울려 보이는 것은 오히려 바로 눈에 보이는 바로 앞의 3 곳의 주택이 아니라 우측에 자동차가 주차된 곳의 주택으로 보이는 곳이 말도 안 되게 철저히 위장하고 있는 모습의 건물. 자신이 풍경을 담기 위한 방법보다, 풍경에 속하길 위한 방법을 택한 것 같다.
물론, 존재감을 과시하며 뽐내는 것도 좋지만, 이 사진만으로 본다면, 우측의 위장된 주택은 참으로 착해 보인다. 가장 최근에 출생신고를 한 혼신지의 집 같은 경우 사실 많이 설계를 하면서도, 옆집 이웃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근 산에서 나오는 돌을 게비온월로 담장을 둘러내어 나름의 방법을 통해 혼신지의 집을 안착시키는데 노력한 것 같았다. 긴 돌담을 보면 담으로 뚜렷한 경계를 구분 짓기보다는 다른 의미의 경계로 해석이 된다. 스스로의 방법으로 혼신지를 품기 위한 제스처로 보인다.
ⓒ Hélène Binet
주말주택이라는 기능에 관해 교과서적인 지식 정도만 알고 있지만, 이곳은 그 교과서적인 공간구성보다는 건축주의 요구 사항에 최대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래서 내게는 사실 다소 어색한 공간들이 몇 곳이 있었으나, 크게 내가 함부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마감과 디테일들을 보면, 참으로 특별하고 장인정신이 눈에 보인다. 마치 건축가 본인이 기초부터, 마감까지 일련의 작업을 모두 다 소화해 낸 것 같은 무서움이 보인다. 대화 중에서도 계단의 참과 폭의 스케일과 내벽 오크목의 마감재에 관한 이야기를 선생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는데 "5년 간 나는 누구와 건축 공부를 했으며, 나는 제대로 된 학습을 하고 있었나?"라고 의심이 될 정도로 사실 큰 상실감을 받았던 시간이었다. 진심과 진짜가 무엇인지 알려 주셨던 순간이었다.
마치 모든 작업을 혼자 독방에서 깎아낸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모든 대화는 공허한 혹은 포장된 내용보다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본 모습을 여과 없이 대화를 통해 약 한시간가량의 답사 시간을 마무리 했었다. 마치 그날의 대화처럼 김현진 선생님과 혼신지의 집, 헬렌 비넷의 혼신지의 집 그리고 포토에세이는 상당히 닮아있다. 쌍둥이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가장 중요한 DNA는 그대로 유지한 느낌의 작업들...
마지막으로, 몇 가지의 재미난 기능이 있는 혼신지의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과연, 이 모던한 공간 안에 담겨진 소소한 감성은 어떻게 연동이 되고 있을지 지금도 궁금하지만, 포토에세이를 보고 상상만 해볼 뿐이다.
ⓒ Hélène Binet
옥외 테라스에서 뻗어져 나온 우수 레일로 몇 방울씩 혹은 폭포수 같은 물들이 바닥돌과 치찰음을 내는 곳.
혼신지의 수북한 물안개들이 마치 캔버스처럼 물들일 외부의 저철분유리의 담이 있는 곳.
수평적 볼륨을 나타내는 알류미늄 금속의 강한 결속력을 거스르는 움직이는 벽이 있는 곳.
내외부 공간의 연속적인 내부마감(오크목)을 통해 외부로 노출된 마감이 시간을 어떻게 담아낼지 궁금한 곳.
혼신지의 집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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